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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지성의 이야기/푸른지성의 일상

책을 써볼까 합니다.

by 푸른지성 2016.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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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책이라고 해도, 이 블로그의 연애 내용을 좀 더 디테일하게 작성한 것이 되겠죠.

블로그에서 보지 못한 저와 카즈미의 다른 모습이 나오기도 하겠네요. ^^;


출판이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써볼까 합니다.

그리고 한자 한자 시작은 했습니다만,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초반부 이야기네요.

아마 써진다면 이런식으로 써질듯~ 합니다.

사진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는 책이 될것으로 예상되구요.

한번 읽어보시고 어떤식으로 쓰는게 좋겠다. 라든지 조언 가능 하시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책명 : 가칭 <푸른지성과 카즈미의 이야기>
 
 
프롤로그


이 책을 정말 출판 할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수 없다.
하지만 우선 써본다…  그리고 정리해본다… 지금까지의 나의 파란만장한 인생, 그리고 지금까지 연결되었던 사람들… 그리고 현재로 오기까지 겪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우선 이야기에 앞서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을 두서 없이라도 모두 풀어내야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야기들의 연결, 원인 등을 설명하기가 어려워 질 것 같다. (실제로는 모든것을 다 글로 표현해서 정리하고 내 머리속에서 지워버리고 싶다.) 가족이 아닌 지인들은 모두 이니셜 한글자로 표기되며, 동명 이니셜은 두번째 이름의 이니셜로 대처한다.







<초등학교>

난 어렸을때부터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본다...

초등학교 1학년때가 흐릿하게 떠오른다.
어떤 여자애의 집 마당에서 어떤 자석노트 (타블렛처럼 생겼지만 전자제품이 아닌데 자석팬으로 화면에 글씨를 쓰면 쓴 흔적대로 철가루가 모여서 그대로 남지만, 노트를 흔들면 썼던 내용이 지워지는 장난감)를 가지고 둘이 놀고 있는 모습이 기억이 난다. 아마 7살 이전에는 제일 친했던 사이였던 것 같다. 기억속의 그 친구는 항상 친근하게 나를 대해주고, 같이 노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게 그리 길지만은 않았다. 어느 순간인가 그 친구의 집이 이사를 가버려서 어떻게도 다시는 만날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 아이의 이름도, 생김새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머리속에는 왜 그때의 따뜻했던 기억이 남아있는 것일까? 아마, 내가 아무 생각도 안하고 살았던 시절중에서 가장 마음이 평온했던 시절이 아니였나 싶다.
생각해보면, 나라는 사람은 초등학교 3학년 까지가 머리속에 아무것도 없었던 시절이였던 것 같다. 어떤날은 시계를 보며 시계 초점이 한바퀴를 돌고 두바퀴를 돌고 몇십바퀴를 도는 것을 눈으로 보며 누워있거나, 어떤날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채로, 해가 떠오르면 그대로 마루에 누워서 햇볕을 느끼고 있거나, 또 비가 오면 마루에 누워 비가 오는 것을 보며 망상에 젖기도 하는 등, 마음의 평온이라는 것이 순수하게 남아있는 사람이였던 것 같다. 
그렇다고 무기력 했던 것은 아니였다. 늘상 건전지와 전구, 모터, 전선줄 따위로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부모님의 전자제품을 고친다는 명목하에 마음대로 뜯고 더 고장내거나 하는 말썽꾸러기였다. 그런 취미생활 덕분에 향후 초등학교 3,4,5학년 시절에는 학교에서 주최하는 ‘과학상자’ 만들기 대회에 나가 상장도 받아오곤 했었다.

초등학교 3학년(당시 1990년)에 처음으로 고모쪽 사촌형을 통해 조립식 컴퓨터를 사게 되었다.
부모님께는 '학교 컴퓨터 학습시간에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는데, 이걸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취지로 말씀을 드리고, 몇달을 졸랐던 것 같다. 그 당시 우리집은 1층짜리 양옥집에서 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집의 구조가 참 이상하다 싶은데 1980년대에 있던 집들은 다 그랬던 것 같다. 평수로는 대략 40평정도의 면적에 방 2개,부엌,마루가 있는 부분, 방 1개, 부엌이 있는 부분, 사랑방만 1개짜리 집 하나, 총 3개의 집이 하나의 마당, 하나의 화장실, 하나의 대문을 같이 쓰고 있었다. 그 3개의 집은 가운데 마당을 기준으로 3면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가장 큰 집에는 우리집이 살고 있었고, 작은집과 사랑방은 세를 주고 살고 있었다. 이 작은집에 살던 가족과의 인연은 지금까지도, 어머니의 친구같은 사이로 가끔씩 왕래하며 지내고 있다. (자연보호 모임으로 지금도 같이 활동하고 있다.)

잠깐 그 집 이야기를 해보자.
마루에 앉으면 마당이 보인다. 마당의 오른편엔 부엌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보이고, 그 바로 옆으로는 사랑방 문이 보인다. 방 하나로 되어있는 사랑방집에는 작은집의 친척 남자분 혼자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랑방집 왼쪽, 즉 마당 건너편에는 샤워실 비슷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 샤워실 왼쪽에는 작은 창고가 있고, 그 왼쪽에 푸세식 화장실, 그리고 푸세식 화장실과 집을 연결하는 대문이 있었다. 집 전체가 1층 구조였고, 마당 건너편에는 샤워실,창고,화장실이 위치한 터라 그 3가지의 건물 위에는 할머니가 꽃이며 채소들을 키우는 장소가 있었다. 돌로만든 계단을 올라가면 어디서 그렇게 구해오셨는지 스티로폼 박스에 고추며, 오이며, 상추등을 심어놓고 어느정도 자라면 뜯어먹이곤 하셨다. 몇년 후에 동네 재개발이 시작되어 양옥들이 모두 헐리고 빌라들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할머니는 큰집으로 가셔서 생활을 하시다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난 아직도 그 양옥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생각이 떠오른다.

그런 양옥집에 살던 시대에 100만원 정도짜리 컴퓨터를 결국엔 구매하게 되었다. 하드디스크도 없고, 5.25인치 디스켓만 꽃을 수 있는 XT에 흑백모니터를 통해 화면을 볼 수 있었다. 결국엔 이 컴퓨터로는 정말이지 디스켓 게임만 신나게 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렇게 초등학교 생활을 보내며 컴퓨터 게임만 하는 모습이 못마땅한 어머니께선 안되겠다 싶은 마음에 컴퓨터 학원엘 보내셨다. 물론, 컴퓨터 학원에서 크게 뭔갈 배운 기억은 없다. 그 당시 1990년도 초반이니, 아래아 한글같은 워드프로그램 사용법이나, 타자연습을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컴퓨터와 밀접하게 가까워진 계기가 아닌가 싶다.

연애에 관해서는 무지상태,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딱 한번 짝사랑 비슷한 것을 한적이 있다. 왜 비슷한 것이라고 했냐면,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재 이쁘지 않냐??” 로 시작한 이야기가 발단이 되어, 친구와 둘이서 재가 좋네 마네하는 정도의 레벨에서 그쳤기 때문이다, 그때도 친구녀석이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럼 편지라도 써봐~~~” 라는 정도로 정리를 했던 것 같다. 지금의 기억으로도 초등학생때까지는 정말 연애랑은 담을 쌓고 살았던 것 같다. 결국엔 우리 둘 다 실제 당사자에겐 단 한마디도 못하고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체도 아직 정하지 않아서, 애매~하네요.

책 많이 읽는 분들의 조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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